며칠 전 사정이 생겨 전세로 살던 방을 급하게 내놓게 됐다. 부동산에 내놓기 전에 중개비용을 아끼기 위해 먼저 유명한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려놓았다. 빨리 방을 빼야 하기에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생기면 집을 지켰고 깨끗하게 방청소도 해두었다. 생각보다 방이 빨리 나가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던 중 같은 학교 학생의 연락을 받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 친구의 방문을 기다리며 씻는 도중 전화가 울렸다. 씻고 나와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전화 안 받으셔서 다른 곳으로 갑니다'라는 문자 한통이 덩그러니 와있었다. 허탈했다.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이었다. 씻느라 전화를 못 받았다는 내 말에 온 답장은 이랬다. '저도 시간이 빠듯해 다른 집 보러 왔습니다'
갑과 을 논쟁이 한창이다. 갑과 을은 우리 사회 거창한 부분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다. 방을 내놓으려 했던 내가 어김없은 '을'이 됐던 것처럼. 우리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 사이, 상사와 직원 사이에 불거지는 갑질 논란을 매일 같이 남의 일처럼 목격하지만, 갑질은 꼭 권력이나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갑을 관계는 일상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고 이것이 갑질로 돌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어느 한 쪽이 완장을 찰 기회가 온다면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의 수직적 구조에서 나타나는 갑질부터 일상 속 수평적 관계에도 도사리고 있는 갑질을 근절시킬 수 있는 해결책은 없을까.
먼저 사회 수직적 구조에서 나타나는 갑질을 잠재우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은 제도적 노력이다. 계약의 내용을 명확히 하고 이를 감시하는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처방이다. 실질적 갑을 관계는 다만, 이런 피상적인 제도적 차원에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이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사회에 고발하는 언론의 적극적 감시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회사 내에서도 내부고발제도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이 제도를 이용할 의사가 있는 사람의 비중은 현저하게 낮다고 한다. 법 앞에 권력이 군림하는 것이다.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 장기자랑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제 3자인 언론이 나서서 취재원을 적극 보호하고 사회에 고발해 해결을 강구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중요한 방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갑질, 즉 갑질의 일상화는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법으로 모든 갑질을 규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언론이 모든 갑질을 들춰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그 방법은 뭉치는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듯 갑질 근절을 위해 토론하고 해결책을 도모하는 공동체에 참여함으로써 함께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최근 SNS 오픈채팅 직장갑질 119가 개설됐다. 폭발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직장갑질 119는 변호사, 노무사, 비정규직 노동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네트워크형 공익단체다. 각자 처한 상황을 공유하고 법률적 자문을 받기도 하며, 가면무도회와 같은 행사를 통해 사회에 경각심을 높이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갑질은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절대 개인적인 일이 아니며,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현실적 장벽이 높다. 갑질은 사회적 문제다. 다같이 해결해야 할 인간 도의적 문제다. 이제는 뭉치면 산다가 아니라 '뭉쳐야' 산다. 이걸 깨닫는 것이 갑을 논쟁 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